2009년 03월 26일
장정일 선생님 서평 - 클래식, 그 은밀한 삶~

아래에 올리는 서평은 소설가 장정일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쓰신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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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자신이 작곡했던, 서양 고전음악의 최고봉이라는 <마태수난곡>을 몇 번이나 들었 을까? 또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피가로의 결혼>을 몇 번이나 감상했을까? 마찬가지로 교향곡의 대명사라는 <운명교향곡>을 작곡했던 베토벤은 그것을 얼마만큼 자주 들을 수 있었을까? 정확한 회수를 안
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우리만큼은 자주 듣지 못했을 거란 답은 할 수 있다.
우리가 18세기 중엽부터 만개한 서양 고전 음악을 그 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자주 들을 수 있게 된 까닭은, 그 시대보다 연주회가 더 많아서가 아니다. 연주회에 관해서라면 우리 시대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연주회가 열리고 신곡이 발표되었던 18세기를 결코 따라 갈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서양 고전 명곡을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음반 덕택이다.
1877년, 토마스 에디슨이 자신의 발명품인 포노그래프에 대고 ‘메리는 작은 양을 가졌네.’라고 흥얼거린 뒤부터 많은 기술자와 장사꾼들은 ‘소리’를 팔 수 있다는 꿈에 매진했다. 그것이 허황된 일이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금세 증명됐다. 1902년, 카루소가 그라모폰에서 취입한 유명 아리아집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른 나이에 그가 죽자, 수많은 나폴리의 사촌들은 그의 음반 로열티로 먹고 살았다. 축음기를 만든 에디슨도, 납작한 원반형 디스크를 만든 에밀 베를리너도 아닌, 레코딩 역사의 진정한 시작은 카루소로부터 시작한다.
예술가들은 신발명품이나 첨단 기술을 환영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차라리 예술가들은 타고난 러다이트(Luddite)라는 게 진실에 더 부합한다. 예를 들어 클렘페러와 같은 지휘자는 음반이 실황 연주의 보잘것없는 대체품에 지나지 않는다며 “음반을 듣는다는 것은 매를린 먼로의 사진을 들고 동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가히, 리허설 도중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남편이 보는 앞에서 캐스팅 된 여가수와 도망을 치기도 했던 불륜의 마에스트로다운 비유라고 할까? 하지만 선(禪)에 경도됐던 금욕적인 마에스트로 첼리비다케는 사생활이 그와 같지 않았음에도, 클렘페러와 똑같이 생각했다. 그 역시 “청자들이 자신의 노력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1948년부터 줄곧 녹음을 사양하다가, 80세에 가까운 말년에 가서야 녹음을 허용했다.
러다이트가 예술가들의 특권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세계에도 배신자(?)가 있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1882년 출생)이 녹음은 연주자의 예술적 영감을 왜곡시키고 청중들과의 교감을 제거한다고 여긴 것과 정반대로, 그보다 약간 후대의 피아니스트였던 빌헬름 켐프(1895출생)는 레코딩이 완벽한 연주를 남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평생 녹음실을 사랑한 ‘스튜디오 장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주회를 마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뒤에 활동한 글렌 굴드(1932년 출생)는 “음반이야 말로 최고의 음악 형식”이라며 더 이상 실연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굴드의 기행에 현혹되어 까맣게 잊어버렸던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더 이상 연주회를 하지 않으면서, 녹음실의 이퀄라이저 앞에 앉아 가위질을(편집)하고 있는 이 사람의 직업은 대체 뭘까?
미국에서 활동하던 굴드가 갑작스레 연주 여행과 음악회를 모두 중단하고 음반 녹음만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대서양 건너편에서 이심전심의 동지애를 느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카라얀이다. 그는 ‘음반 녹음’이 클래식 음악의 현실이자 미래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했고, 실천에 옮겼다. 전집 녹음을 통해 베토벤의 아홉 개 교향곡을 골고루 세상에 알린 사람은 카라얀, 스테레오 녹음이 정착되는데 공헌 사람은 카라얀, 지휘자․가수․연주자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판매고를 올린 클래식 음악가도 카라얀이다.
흔히 카라얀이 지휘봉을 휘둘렀던 베를린 필하모닉을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말하지만, 베를린 필하모닉과 카라얀이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 손오공처럼 별쭝난 분신술을 연마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말해 수 백 명의 카라얀과 그 수에 맞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전 세계를 순회하며 터질 듯한 ‘현악 파트’를 과시했던 게 아니라, 1분에 33회전을 하는 음반을 대신 보내,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의 턴테이블을 점령했을 뿐이다.
밤 새워 읽은 노먼 레브레히트의『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마티, 2009)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음악이 작곡가의 창조적 내면과 비르투오소(virtuoso : 연주의 명인)에 대한 화제로 점철됐던 19세기적 틀을 벗어나, 오로지 클래식 ‘음반’의 역사만을 기술한다. 영화와 함께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20세기의 예술 형식이었던 음반은 세 가지 변수와 능력의 조화와 합이다. 마케팅 능력이 있는 기획자(산업), 창조적인 녹음 엔지니어(기술) 그리고 연주력은 물론 연예인에 뒤지지 않는 유명세를 지닌 음악가(예술).
본서는 메이저 음반사의 기획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냉혹하고 추잡스러운 싸움과, 음악 비즈니스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였던 음악 예술가들의 실상은 물론이고 녹음 엔지니어들이 더 낳은 소리를 얻기 위해 분투했던 노력들을 담고 있다. 학술적이기 보다는 현장의 전면과 이면을 보여주는데 방점이 찍힌 이런 류의 책은, 저자가 얼마만큼 현장의 핵심에 근접했는지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생생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신원이자 스파이였다.
어떤 역사든 탄생․성장․완숙․쇠퇴를 겪는다. 독자들은 이 책을 열자말자 “나는 한 음악 칼럼에서 클래식 음반의 죽음을 선언했다”는 저자의 서문을 보게 되고, 이 책의 1부 마지막 장에서 다시 한 번, 근 100년간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발전되어 왔던 클래식 음반이란 예술은 이제 “종착점”에 다다랐다는 저자의 묵시록을 듣게 된다. 음반이 ‘예술’로서의 성격을 상실케 된 까닭 가운데는, 초창기의 음반 ‘녹음’ 작업이 연주자들끼리 경쟁과 비교를 가능하게 해주었으나, 이제 와서는 하나의 명연을 규범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주자들의 다양한 스타일을 평평하게 만든 병폐가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진 음반 ‘산업’의 횡포와 간섭은 음반 ‘예술’을 질식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언제부터인가 횡행하는 다종다양한 부고 선언을 나는 물리치려고 한다. 클래식 ‘음반’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 대한 부고도 이미 나와 있지만, 내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한, 그건 죽은 게 아니다. 그리고 이 책 2부에 실려 있는 ‘불멸의 음반 100선’을 보고 이 음반들을 다 갖추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이상(실제로 이 글을 쓰는 날, 95번째로 소개된 음반을 용케 구했다), 클래식 음반 예술 역시 아직 죽은 게 아니다. 우리는 음반 덕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고 연주자의 명연을 영구히 소유하게 됐고,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 장정일 씀
# by | 2009/03/26 11:43 | 나온 책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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