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여성 버전 [호밀밭의 파수꾼] - 페트로폴리스


고전의 반열에 들 만한 성장 소설을 떠올려보자.

'성장소설'이라는 형식에 남여 구분이 따로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아담이 눈뜰 때]를 보며 자란 나 또한 뭔가 낯선 남(학생)의 세계를 엿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거침없는 반항과 예쁜 여학생을 향한 회의 섞인 순정, 허름한 옥탑방 저주받을 오디오 세계로의 입문까지...

소설뿐 아니라 영화도 그렇다. [원스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부터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까지.

만화는 또 어떤가. [톰 소여의 모험]이나 [코난]까지... (주제를 '성장'이라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ㅡ.ㅡ;;)

작가들이 남자니까 남성의 성장을 다루는 거라고? 아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의 '성장 소설'로 자리잡고 있는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은 여성이니까.

[페트로폴리스]는 아주 드문 여성의, 여자 아이의 성장소설이다.

모든 성장소설에서 그려지는 멘토(스승이거나 아버지이거나 형일 경우가 많다)와의 갈등은 '어머니'로 시작하며, 역사의 굴곡을 극복하고 이겨낸 전형적인 캐릭터로는 (스탈린의 억압 정치에 희생당했던 '인민의 적'의 부인이었던) '할머니'가 등장한다.

소설 전체의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페트로폴리스'라는 단어는 오시프 만델스탐의 시집 [트리스티아]에 실린 시의 제목이다. 만델스탐은 러시아 시어의 정수로 인정받는 작가로, 스탈린으로부터 추방당했던 문학인이다. 그의 유명한 시집 [트리스티아]는 판금조치당하고 시장에 깔린 모든 시집은 전부 불태워졌다. 읽지도, 갖지도 못하는 시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집은 어떻게 후대에 이토록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까? 바로 만델슈탐의 부인 덕택이다. 부인은 죽음을 당한 남편을 대신해, [트리스티아]의 모든 시를 외워 구전으로 시를 전했다.

 

소설에서 시집 [트리스티아]는 실패한 사회주의가 '소득 수준'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러시아와 몰락한 교양계급 '인텔리겐치아'의 운명이면서, 동시에 그 화려한 '폐허'를 갈망하는 허영의 사치품이다. 버리기에는 너무도 지적이고, 취하기에는 참 쓸모없는 "인텔리겐치아의 교양".

 

암튼, 이런 시공간에서 주인공 사샤 골드베르크가 태어난다. 러시아 사람이면서 흑인 혼혈이고, 혼혈이면서 유대인인, 인텔리겐치아의 후예로.

사샤는 여느 소녀처럼 달타냥과 싱클레어를 보며 이상형을 키워가지만, 호기심과 두려움을 혼돈하는 사이 열네 살 나이에 임신을 하고 만다.

허구한날 '모스크바 아카데미'를 들어가야 한다고 닥달하는 유배당한 공주 같은 어머니와, 열살 때 미국으로 도망가 버려 소식조차 없는 아버지, 군대에 징집당한 자퇴생 남자친구. 

사샤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by 도서출판 마티 | 2009/07/28 20:46 | 나온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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